나? 좀 놀아본 남자!

얼마 전 한 소셜 모임에서  ‘내 인생의 오락실(五樂室)’이란 주제의 토크쇼에 패널로 참석했다. 5명의 패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취미와 즐거움에 대해서 논하고 청중들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사회자로부터 첫 질문을 받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 낙을 등지고 사는 사람을 왜 섭외하셨냐? 나는 무락자(無樂者)인데…”라고. 나는 왜 스스로를 '무락자'라고 평했을까? 젊은 시절 이런저런 즐거움을 가져봤지만 지내고 나니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가정행복코치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모범생, 원조 자상남, 모태 애처가인 줄 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나, 좀 놀아본 남자다. 나도 놀만큼 놀았다. 술/담배 좋아하고 예쁜 여자 좋아하고 모 여대 메이퀸과도 사귄 적이 있다. 대학 다닐 때는 요즘 클럽에 해당하는 고고장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락거렸다. 대학생 때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밥 먹듯이 술을 먹었고 십여 년 동안 골프에 미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 30대 후반 철이 들기 시작해 그동안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끊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담배였다. 
학창 시절부터 담배를 배워 17년 애연가였지만 금연 한지 30년이 넘는다.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피우면서 '이 좋은 걸 왜 끊어?'라고 생각했었다. 담배를 끊고 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금연이라고 말하겠다. 담배를 피울 때는 피우는 즐거움 밖에 몰랐지만 담배를 끊고 보니  '피우는 즐거움'보다 '끊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다. 생각했던 것보다 10배, 100배 더 유익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끊었는데 끊고 보니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으로도 정말 유익했다. 금연에 성공하면서 나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나 스스로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됐다. 그 이유로 많은 도전을 시작하고 성취했다.

두 번째는 술이다 
나도 젊은 시절 술 깨나 마시던 사람이다. 2차, 3차도 갔고,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차에서 잔 날도 있고, 새벽에 귀가해서 다음날 오후에 잠을 깬 적도 있었다. 필름이 끊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삼십 대는 직장 생활하면서 절반은 야근, 절반은 음주였다. 사십 대는 주 4~5회는 마신 것 같다. 오래 술을 마셔본 끝에 내린 결론은 과유불급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몸이 부대끼기 시작했다. 술 먹은 다음 2~3일은 몸이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렇게 마시다가는 큰 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술을 멀리하게 됐다.

요즘은 교제에 필요한 정도로만 술을 마신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흥청망청 마시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술자리가 끝나지 않아도 보통 11시 전에 자리를 뜬다. 개중에는 그런 나를 가정적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범생이라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40대 이후 술자리에 관한 내 원칙은...
1. 술은 과하게 마시지 않는다
2. 12시 전에 반드시 귀가한다
3. 귀가 후 반드시 옷은 제 자리에 걸어두고 샤워 후 취침한다 (이건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을 위한 배려다)

세 번째는 골프다. 
골프 마니아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십여 년 이상 치던 골프를 끊었다. 골프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골프를 치면서 정말 재밌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골프를 계속하는 동안 몸이 여기저기 쑤시면서 고장이 났다. 운동도 안 되고 연습장이며 라운딩에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을 한 번 하면 반나절 내지 하루가 깨지니 다른 일을 하는 데 지장이 많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스코어가 별로 안 좋으니 흥미를 잃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골프를 끊고 나니 여유 시간이 많이 생겼다. 나는 책을 두 권 썼는데 모두 골프를 그만둔 다음이다. 그동안 책을 못 쓴 이유가 꼭 골프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골프를 끊고 나니 상대적으로 시간 활용을 잘할 수 있었다. 또 골프를 안 치면 비즈니스가 안 된다고 

그 외에도 포기한 놀이가 많다. 당구도 오래 쳤고, 바둑도 좋아했으며, 스키도 즐겼지만 이제는 즐기지 않는 것들이다. 젊어서 이런 놀이들을 다 해 봤기에 이제는 더 이상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놀이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을까마는 젊어서 못 놀아 본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놀지도 모른다. 늦바람이 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도 젊은 시절 이런 걸 안 해 봤더라면 뒤늦게 이런 것들에 빠질지도 모른다. 늦바람보다는 이른바람이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럼 나는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게 생겼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운동(헬스)하는 걸 좋아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담배, 술, 골프를 끊으면서 생겨난 것들이다. 담배를 끊으면서 자신감을 가졌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일이 뭘까를 생각해보니 독서였다. 독서를 많이 하다 보니 글 쓸 생각을 하게 되고 글을 써나가다 보니 책을 내고 싶어 졌다. 무턱대고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책을 쓰게 됐다. 감사하게도 출간한 책 두 권이 모두 오래도록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또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다 보니 평생을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헬스장에 나가게 됐고 운동을 하다 보니 몸짱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5개월간의 몸짱 프로젝트를 통해 화보까지 찍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운동은 일상이 됐다. 저녁 약속이 취소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무엇보다 요즘 내게 즐거움을 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출간하고 강의를 하고 가끔 방송에도 나가는  일들은 모두 내게 큰 즐거움을 준다. 젊어서는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이제는 생계를 위해 일 하지 않는다. 28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생계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내 사명감을 따라 일을 한다. 삶의 목적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그 일로 인해 많든 적든 대가까지 주어진다면 더더욱 기쁜 일이다.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을 때는 그 손을 펴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한다. 담배를 계속 피울 것인지, 술을 계속 마실 것인지, 골프를 계속 칠 것인지, 책을 읽을 것인지, 글을 쓸 것인지, 운동을 할 것인지 모두 선택이다. 내가 결심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47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즐겨 술을 마셨다면, 골프를 즐기고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을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결혼 분야 베스트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