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100주년 칼럼

어린이날은 놀이공원 가는 날이 아니다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인 거 아시나요?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 소파 방정환 선생과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포, 제정하였으니 100주년이 맞네요. 100년이나 됐다는 것도 놀랍고, 일제 강점기에 이런 운동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네요.

지금이야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지만 인권 유린이 일상적이던 당시엔 아동 인권이 얼마나 무시되고 짓밟혔을지 쉽게 짐작이 되죠. 어른의 인권도 무시되던 시대에 어린이의 인권을 주장한 방정환 선생의 지혜가 새삼 놀랍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왜 어린이 날을 만들었을까요? 1923년 5월 1일(지금은 5월 5일)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되었는데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고 한 것처럼, 방정환 선생은 부모와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주기를 당부한 것입니다. 

100년이나 된 어린이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나요?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비싼 장난감을 사주고 놀이공원에 데려가며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줍니다. 그게 답니다. 그날은 웬만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예약하기조차 힘듭니다.

위에서 아동 학대 부모가 많지 않다고 했는데 그럼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엽기 부모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통의 부모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 양육을 잘하기를 바라지만 '무식이 용감'이라는 말처럼 자녀 양육에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멀리 갈 거 없습니다. 나 자신을 보면 됩니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셨겠지만 그분들도 자녀 양육에 관한 학습을 전혀 하지 않으셨기에 나 같이 모자란 부모를 만드신 겁니다. 나는 내 부모님이 방임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아들 딸을 키울 때는 무조건 사랑하기보다는 다소 엄하게 키웠습니다. 도덕성과 책임감을 우선으로 가르치고 이것저것 많이 시키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부모교육도 받지 못했으면서 말이죠.

내 아들은 어떨까요?  아들은 자식이 하나뿐인 데다 내가 엄하게 키워서 그런지 엄청 아들을 사랑합니다. 30대 후반의 아들 내외가 맞벌이 부부인지라 직장 다니면서 힘들 텐데도 7세 아들이 해 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줍니다. 특히 손자는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데 아빠가 그 아이와 노는 모습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어떤 아빠가 저렇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죠.  대부분의 아빠들은 놀이터에서 아들 혼자 놀게 하고 휴대폰만 들여다본다고 하는데 내 아들은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니 손자도 아빠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요. 아빠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거든요. 아이에게는 아빠가 슈퍼맨입니다. 그러다 보니 손자는 다른 또래 아이들과 관계 맺기나 사회성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아빠가 아이를 지나치게 수용하다 보니 손자가 책임감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또 어떤  때는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다가도 힘들고 지치면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으니까요) 아이에게 과한 꾸중을 합니다. 아이로서는 당연히 혼란스럽겠죠. 나도 자격 없는 부모지만 아들이 지금 아들(손자) 양육하는 걸 보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내가 아들에게 왜 아이를 그렇게 대하냐고 물었더니 아빠(나를 가리킴)가 자기 어릴 적 별로 놀아 주지도 않고(아들아, 나는 그때 그럴 수 없었단다. 1980년대 직장인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는지 아니?)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그래, 그땐 사랑보다는 먹고사는 게 우선이었지. 미안해)해서 자기는 아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래서 무한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는 사회성 발달도 늦고 저 혼자 밖에 모르는 아이가  돼 버렸다며 이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일곱 살 때 수영도 배웠고 스키 타는 법도 배웠는데 자기 아들은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하니 내년이면 벌써 초등학교를 가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하소연하네요. (짜식, 내가 해준 게 없다며?) 

많은 부모들이 이와 같습니다. 자기 부모가 자신을 양육한 것과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극단적인 자녀 양육법을 선택합니다. 내 부모님도, 나도, 아들도 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크고 깊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잘 키우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한다고 자녀를 잘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살인자나 강도도 자신의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날이라고 하는 것은 자녀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주거나 놀이공원에 데려가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날이 아닙니다. 그걸로 부모 역할 다 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자신과 자녀가 부모 자식으로 만난 것에 대해 의미를 상기하고 가족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다소 부족하더라도)에 감사하며 자녀의 미래를 축복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자녀 양육에 관한 자신의 부족을 돌아보는 날이어야 합니다. 평소 자녀를 존중하지 않고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가 어린이날 큰 선물을 사준 들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자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안전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존중받으며 건강하게 자라 사회의 중추적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그럼 진정한 부모 역할은 뭘까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뒤늦었지만 자녀 양육에 관한 학습을 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녀교육’이라는 말 대신 ‘부모교육’이란 말을 씁니다. 교육받지 않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운전면허 없이 무면허 운전을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운전교육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백 년 전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날 제정 취지를 떠올리며 나를 비롯하여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진정한 부모 역할을 깨닫고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