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생리통을 모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말이 있다.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의 제목인데, 원래는 원작자 킴벌리 커버거 (Kimberly Kirberger)의 시 'If I knew Then What I know now'를 류시화 시인이 번역하여 시집의 첫 수록 시이자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 말은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적당한 때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모르는 게 있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삶의 지혜다. 사람은 자신이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게 많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나이 든 사람들이 보면 우습거나 가소로워 보일 수 있다. 옛말에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너도 내 나이 돼 봐라"라는 말이 있다. 또 부모가 자주 하는 말 중에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자녀로 있을 때는 절대로 모르던 것들이 부모가 돼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모르는 것이 있다.
내 친구 중에 건축 설계가로 대학에 나가서 겸임교수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이태리 로마의 콜로세움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정작 자신은 가보지도 않고 책과 사진, 영상을 통해서 공부한 다음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콜로세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가 막상 콜로세움을 처음 대했을 때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한다. 뒤이어 든 생각은 "아,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학생들을 가르쳤구나"였다고 한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지식이나 팩트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정서를 전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랑과 결혼, 출산이 그렇다. 사랑하는 감정은 책으로 느낄 수 없다. 그 황홀감, 충만함, 오묘함은 직접 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다. 결혼도 그렇다. 오늘날 만혼이나 비혼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사정과 논리가 있겠지만 평생 잘 살 수 있을까. 아직 젊은 나이의 그들은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인생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40대 중반이 되면 정서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외로움으로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고, 육체적으로는 이런저런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60세 전후가 되면 또 후회를 하고 이후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이다. 출산은 어떨까. 결혼했다 하더라도 출산을 늦추거나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부부도 많다. 육아의 힘듬과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자녀를 낳아 키우는 즐거움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안 된다고 한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남자인 나는 두통, 치통은 알아도 생리통은 모른다. 생리통에 관한 책을 수 백 권 읽어도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100세 현역인 김형석 교수의 최근 책 '행복 예습'에 보면 나이 90이 되어서야 비로소 행복을 생각하게 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너나없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좇아 살지만 정작 노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90이 되어서야 행복을 생각하게 됐다니 저으기 놀랍다. 다들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게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렇게 살았다"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더니 행복해졌다"는 말이 순서라고 했다. 즉 행복은 '즐거움과 보람된 삶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때의 즐거움은 나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폐쇄적이며 이기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 있는 의무'에서 오는 즐거움, 나아가 베푸는 즐거움과 그 대가로 주어지는 즐거움을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정의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겠지만 이걸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또한 적당한 경륜을 갖게 되고 나이가 들어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먼 훗날 오늘 쓴 글을 뒤돌아볼 때 '아, 내가 참 모르는 게 많았구나'하고 고백할 것이다. 지금은 내 생각이 다 맞는 것 같지만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선배들이 보면 한심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겸손해야 할 이유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결혼 분야 스테디셀러}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결혼 분야 베스트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