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연녀랑 산다

나는 유부남이다. 
올해로 결혼한 지 36년째다.
짧지 않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내연녀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되묻는다.  
"진짜 내연녀랑 사세요?" "혹시 이혼... 혹은 졸혼하셨어요?"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삼행시 놀이를 제안하고 그들에게 운을 떼라고 한 다음 뜻을 풀어준다.  
(내) 사랑하는 
(연)인인 
(녀)자라는  뜻이다.
나는 아내를 '내연녀'라고 부른다.

야릇한 뭔가를 기대했다가 뜻풀이를 듣고 "에이 뭐야?" 하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나는 요즘 들어 아내와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게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애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30년, 40년, 50년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살기에는 결혼 생활이 너무 길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 때나 신혼 때의 열정적인 감정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타령만 하며 살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할 일도 많다. 또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많다고 해서 열정적인 사랑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혼 년수가 오래되면 다들 재미없게 사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래된 부부들 중에서도 누가 봐도 다정해 보이는 부부도 많다.  손을 잡고 다니거나 스킨십을 즐겨하는 부부도 많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연 후에 여성 진행자가 물었다 "선생님! 한강 고수부지에 가면 5~60대 부부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거 다 쇼죠? 아니 오래된 부부가 무슨 정이 있다고 그러고 다녀요? 재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요? 부부 사이가 안 좋으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안 좋다마다요. 우리 남편 꼴도 보기 싫어요. 우리 곧 이혼할지도 몰라요"  

나와 그녀의 대화가 이어진다.  
나 :    "연애결혼하셨어요? 중매결혼하셨어요?"
그녀 : "연애결혼이요"
나    : "그럼 신혼 때는 어떠셨어요?"
그녀 : "아, 그때야 죽고 못 살았죠"
나    : "연애도 하셨고, 신혼 때 뜨거운 사랑을 해보셨다니 이제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남편 미워하는 것은 많이 해보셨으니 이제부터 남편의 장점을 하루 한 가지씩만 찾아서 써보세요. 그래서 50개가 찾아지면 저랑 다시 만나요"
그녀 : "에이, 우리 남편 장점 없어요. 뭘 해도 꼴 보기 싫은데 장점이 어딨어요"
나   : "그래도 한 번 해봐요. 뭐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이혼이야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그녀 : "알았어요. 한 번 해볼게요"

그녀는 별 기대 없이 가볍게 대답하는 듯했다. 그 후로 한 달쯤 지난 뒤에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제가 점심 대접할게요. 그동안 우리 집이 겨울왕국이었는데 요즘 봄이 왔다 아닙니까"라며...

만나서 사연을 들어보니 내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 장점을 하나도 못 찾겠더니 찾으려고 노력하니 하루에도 여러 개를 찾을 수 있었고, 한 달이 지나자 50개도 넘게 찾아지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 남편의 장점을 적고 보니 연애 때나 신혼 때 다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었어요. 우리 남편은 30년 가까이 한결같았는데 제가 남편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었어요. 남편이 아니라 제가 문제였어요" 그 이후 그녀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매일 아침 남편과 커플 체조를 한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에는 꼴도 보기 싫다던 남편이었는데...

그렇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그 사랑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의 현실은 우리를 사랑 타령만 하며 살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사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며,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직장생활이나 사업으로 돈도 벌어야 한다. 그러느라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 표현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일단 돈부터 벌고, 사랑은 나중에 해줄게"라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가족은 점점 멀어져 간다. '완벽한 타인'이 되어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돈도 벌고 자기 계발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은 내팽개친다.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산다. 나중엔 뭣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훈련이다. 연애 시기와 신혼 때는 감정으로 살지만 기나긴 결혼생활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으로 그 사랑을 유지해야 한다. 매일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자주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를 보면 기억해뒀다가 배우자를 접대(?)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에이, 가족끼리 어떻게 그렇게 해요?"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가족이니까 해야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고마운 사람 아닌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면 그거야말로 불륜이다. 가족에게, 배우자에게 그렇게 할 때 죽었던 연애세포가 되살아난다. 그러면 평생 연애하듯이 살 수 있다. 그게 진짜 행복한 부부다. 

내연남, 내연녀와 함께 '짝쪽쭉' 행복해지자~
마지막 삼행시로 마무리한다

부부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쪽)쪽쪽 키스하면서
(쭉) 백년해로합시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결혼 분야 스테디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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